객체지향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객체지향이란 실세계를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모델링할 수 있는 패러다임” 이라는 설명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실세계의 모방이라는 개념은 객체지향의 기반을 이루는 철학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유연하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객체지향 분석, 설계를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서 객체에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실세계의 사물을 발견할 확률은 높지 않다.
- 존재하더라도 객체와 사물간의 개념적 거리는 유사성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먼 것이 일반적이다.
객체지향의 목표는 실세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럼 왜 실세계의 모방이라는 개념을 얘기할까? 그 이유는 실세계에 대한 비유가 객체지향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고 학습하는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 객체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현실 세계의 생명체에 비유하는 것은 상태와 행위를 캡슐화(encapsulation)하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자율성(autonomous)을 설명하는 데 효과적이다.
-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암묵적인 약속과 명시적인 계약을 기반으로 협력하며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은 메세지(message)를 주고받으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collaboration)하는 객체들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적합하다.
- 실세계의 사물을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객체를 식별하고 구현까지 이어간다는 개념은 객체지향 설계의 핵심 사상인 연결완전성(seamlessness)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틀을 제공한다.
요청과 응답으로 구성된 협력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와 마주치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지식을 알고있거나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request) 한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사람 혹은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 대한 요청이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요청을 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요청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요청을 받은 사람은 주어진 책임을 다하면서 필요한 지식이나 서비스를 제공 즉, 다른 사람의 요청에 응답(response) 한다.
요청과 응답을 통해 다른 사람과 협력(collaboration)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들어 줌, 협력의 성공은 특정한 역할을 맡은 각 개인이 얼마나 요청을 성실히 이행하는가에 달림
역할이라는 단어는 의미적으로 책임(responsibility)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사람들이 협력을 위해 특정한 역할을 맡고 역할에 적합한 책임을 수행한다는것은 몇가지 개념을 제시함
- 여러 사람이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어떤 케셔가 주문을 받는지 상관 없음, 어떤 바리스타가 커피를 제조하던가 상관없음
- 역할은 대체 가능성을 의미한다: 손님 입장에서 캐셔는 대체 가능(substitutable)하다
-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요청을 받은 사람은 요청을 처리하는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바리스타가 라떼아트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음)
-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캐셔와 바리스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음
역할, 책임, 협력
협력의 핵심은 특정한 책임을 수행하는 역할들 간의 연쇄적인 요청과 응답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
시스템은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객체로 분할되고 시스템의 기능은 객체 간의 연쇄적인 요청과 응답의 흐름으로 구성된 협력으로 구현된다.
객체지향 설계는 적절한 객체에게 적절한 책임을 할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책임은 객체지향 설계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역할은 관련성 높은 책임의 집합이다. 역할은 유연하고 재사용 가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설계 요소다. 대체 가능한 역할과 책임은 객체지향 패러다임의 중요한 기반을 제공하는 다형성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협력 속에 사는 객체
인간의 세계에서 사람이 없으면 역할, 책임, 협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객체가 존재하지 않는 객체지향 세계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협력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객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하고 두 덕목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 객체는 충분히 협력적이어야 한다. 객체는 다른 객체의 요청에 충실히 귀 기울이고 다른 객체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 수동적인 존재는 아님,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지는 객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 객체는 충분히 자율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요청에 따라 행동하지만 최대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한다.
상태와 행동을 함께 지닌 자율적인 객체
객체는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상태를 알아야 한다.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필요한 행동과 상태를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객체의 자율성은 객체의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객체의 사적인 부분은 객체 스스로 관리하고 외부에서 일체 간섭할 수 없도록 차단해야 하며, 객체의 외부에서는 접근이 허락된 수단을 통해서만 객체와 의사소통해야 한다. 객체는 다른 객체가 무엇(what)을 수행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어떻게(how)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협력과 메세지
객체지향의 세계에서는 오직 한 가지 의사소통 수단만이 존재한다. 이를 메세지라 한다. 한 객체가 다른 객체에게 요청하는 것을 메세지를 전송한다고 말하고 다른 객체로부터 요청을 받는 것을 메세지를 수신한다고 말한다. 객체지향의 세계에서 협력은 메세지를 전송하는 객체와 메세지를 수신하는 객체 사이의 관계로 구성된다. 이때 메세지를 전송하는 객체를 송신자(sender)라고 부르고 메세지를 수신하는 객체를 수신자(receiver)라고 부른다.
메서드와 자율성
객체가 수신된 메세지를 처리하는 방법을 메서드(method)라고 부른다.
메세지를 수신한 객체가 실행 시간에 메서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분 짓는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다.
외부의 요청이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메세지와 요청을 처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메서드를 분리하는 것은 객체의 자율성을 높이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것은 캡슐화(encapsulation)라는 개념과도 깊이 관련돼 있다.
객체지향의 본질
- 객체지향이란 시스템을 상호작용하는 자율적인 객체들의 공동체로 바라보고 객체를 이용해 시스템을 분할하는 방법이다.
- 자율적인 객체란 상태와 행위를 함께 지니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객체를 의미한다.
- 객체는 시스템의 행위를 구현하기 위해 다른 객체와 협력한다. 각 객체는 협력 내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며 역할은 관련된 책임의 집합이다.
- 객체는 다른 객체와 협력하기 위해 메세지를 전송하고, 메세지를 수신한 객체는 메세지를 처리하는 데 적합한 메서드를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클래스는 협력에 참여하는 객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구현 메커니즘일 뿐이다. 클래스보다 객체가 더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클래스들의 정적인 관계가 아니라 메세지를 주고받는 객체들의 동적인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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